전장의 영웅들

워크래프트 어드밴처스는 결국 시기를 놓친 탓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블리자드가 그들의 대표작인 워크래프트 시리즈 자체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타크래프트가 재패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장은 웨스트우드가 그들의 야심찬 C&C 시리즈 차기작, 타이베리안 선을 내놓음으로서 또다시 달아오르고 있었다. 블리자드가 만약 워크래프트의 신작을 내놓는다면, 이번 작품은 단순히 전작의 업그레이드 정도가 아닌, 장르 자체를 혁신하는 게임이 되어야 했다.

RTS 장르에도 드디어 3D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었다. 많은 유닛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르의 특성 상 다른 게임들에 비해서 3D의 도입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느낀 다른 개발사들은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블리자드도 그저 똑같은 게임을 폴리곤으로 표현하는 정도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생각은 없었다. 진정으로 삼차원 공간에서만 가능한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까지 거의 모든 RTS 게임들이 채택한 시점은 플레이어가 전장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었다. 블리자드는 시점을 보다 지면과 가깝게 내려서 전장에서 부하들을 이끄는 영웅 유닛에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영웅 유닛의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었고, RPG의 요소들까지 가미되었다. 영웅 유닛들은 레벨 업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장비할 수 있었고, 보물을 찾거나 사이드 퀘스트를 수행할 수도 있었다. 전투는 보다 액션 지향적이 되었으며 영웅 유닛은 직접 전투에 뛰어들면서 동시에 그를 따르는 주변의 부하 유닛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모든 초점이 항상 영웅 유닛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카메라 시점 역시 3인칭 액션 게임처럼 영웅의 뒷모습을 따라다니는 방식이었다.

액션 장르와 RTS 장르의 결합은 액티비전이 1998년에 선보였던 배틀존과 같은 게임을 통해 그 가능성이 검증되었지만 RTS와 RPG 요소의 결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개발은 이러한 흐름으로 계속 진행되었으나 2000년 초반에 그 방향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된다. RPG의 개념들을 가미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이로 인해서 워크래프트 고유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소들이 점점 희미해져 갔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다시 시점을 하늘 위로 올려보내고, 전통적인 RTS 인터페이스를 배치한 후에 지금까지 개발된 게임이 어떠한 변화를 갖게 되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결국 게임은 다시 익숙한 RTS 게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전까지 블리자드에서 시도했던 RTS와 RPG의 결합에 대한 실험들은 그 잔재를 크게 남기게 되었다. RPG 요소들과 보다 작은 수의 유닛들에 대한 집중이라는 두 가지 만으로도 게임은 기존의 RTS와 완전히 다른 감각을 선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샤이니 엔터테인먼트는 2000년에 세크리파이즈(Sacrifice)라는 게임을 내놓는데,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III를 초기 방식대로 밀어붙였다면 이 게임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 불가피할 정도로 블리자드의 개발 초기 비전을 멋지게 현실화시킨 게임이었다.
 

클릭하시면 워크래프트III 게임플레이 동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길고 긴 개발과정을 거쳐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시대가 2002년 7월 3일에 이르러서야 발매되었다. 팬들과 게임평론가들은 새로운 워크래프트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새롭게 도입된 RPG 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게임플레이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음은 물론 스토리의 전개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야기의 진행을 보여주는 요소가 더 이상 스테이지 중간 중간의 이벤트 신이나 텍스트 몇 줄에 한정되지 않고 미션 자체의 흐름과 대화 등에 완전히 녹아들게 되었던 것이다. 나이트 엘프와 언데드 종족의 추가는 보다 다양하고 전략적인 게임플레이를 가능케 함은 물론 워크래프트의 세계관과 설정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많은 면에서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원래의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의 틀을 유지한 채, 워크래프트 어드밴처스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발매 1개월 만에 워크래프트 III의 판매량은 100만 장을 돌파하였고, 작품에서 보여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워크래프트 III의 인기가 오랫동안 식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평단의 찬사와 함께 등장한 확장팩이 그 다음 해에 발매되어 워크래프트의 세계에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였다. 게임 내에 포함된 캠페인 에디터 덕분에 사용자에 의한 모드도 활발히 이루어져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디펜스 오브 더 앤시언츠(Defense of the Ancients) 같은 모드는 매우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 덕분에 워크래프트 III는 발매 후 7년이 지난 지금에도 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 하나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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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8.18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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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그린B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리자드의 스토리는 언제나 흥미진진 한것 같아요. ㅎㅎ
    뭐랄까.. 확실히 게임을 아는 사람들이죠. 폐인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는-_-..

    2009/08/27 16:07
  2. BlogIcon XROK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스타크래프트2의 맵에디터의 가용범위는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워3에서 익힌 교훈을 그대로 개량계승;한 블리자드이 사고방식과 철학이 돋보이더라구요

    2009/08/27 16:19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작품은 엎어버리더라도 개발 중 얻은 노하우는 철저하게 다음 작품에 써먹는 영악함.. 대단하죠.

      2009/08/28 12:54
  3. 바람따라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WOW 이야기가 금주안에 나올 수 있다는 코멘에 일단 추천부터 꾸욱~
    ^___^

    2009/08/27 18:24
  4. BlogIcon joogunking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에 워크래프트3의 연이은 성공으로도 충분히 화려한 블리자드 게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Wow가 드디어 나오겠군요.. 정말 놀라운 개발사입니다. 좋은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8/27 21:36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사실 저는 WoW를 못해봤습니다. ㅎㅎㅎ 워낙 빠져드는 성격상.. 폐인될까 두려워요~

      2009/08/28 12:55
  5. ARiNA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크래프트3가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유통되지 못한게 개인적으로 좀 아쉽네요...

    2009/08/27 22:06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아마도 국내 입맛에는 스타가 안성맞춤인가 봅니다. 일반적으로 판타지보다는 공상과학쪽이 더 잘 먹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2009/08/28 12:56
  6. BlogIcon myrrh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샤이니의 '새크리파이스'도 언급이 되었군요. 워크래프트III만큼 성공/롱런한 게임은 아니지만, 이 게임도 확실히 훌륭한 게임입니다. 덧붙이자면 '워크래프트III'의 싱글플레이 캠페인은 번지의 '미스' 시리즈와도 닮아있어요. :)

    2009/08/28 01:14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잠깐 인터넷 뒤져보니 상도 받고 평가도 좋은 게임이었더군요. ㅎㅎ

      2009/08/28 12:56
  7. 도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퓨리언이 디레를들다니.. 관광겜이구나

    2009/08/28 04:24
  8. 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3d 전략하면 일단 미스가 아닐까요? 최초 워3 계획안을 읽어보면 미스 시리즈를 참고 한 것 같네요. 그리고 rts에서 영웅의 도입은 킹덤언더파이어에서 먼저 시작한 걸로 들었어요. 킹덤언더파이어가 인기를 얻고 이후에 다른 게임에서도 rts에서 rpg요소의 도입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읽은게 생각이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참. 아직 wow를 해보시지 않았다면, 꼭 해보시기를.. 스랄 형님과 리치왕을 만나고, 일리단과 맞짱뜨는 재미가 사뭇 흐뭇합니다.이번에 확장 3편 기획안이 떴던데.. 드디언 고블린까지 등장하더군요.

    2009/08/28 23:58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은 게 아닐까요? 사실 연재하면서 살짝 땡기긴 했는데.. 지금도 사놓고 먼지만 먹는 게임들이 많아 포기했습니다. ^^;;

      2009/08/31 09:14
  9. Rail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스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라기보단 전술 시뮬레이션에 가깝죠 일반화된 용어는 아니지만....
    전 레인보우 식스, 코만도스 등을 전술 시뮬레이션으로 분류하는데요

    2009/08/30 18:12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아 코만도스.. 저는 PC게임은 잘 안하지만 이 게임만큼은 꽤나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9/08/31 09:15
  10.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수정/삭제  댓글쓰기

    SF보다 판타지쪽을 더 좋아합니다. 워크래프트3가 한국에서 스타에 비해서 흥행은 못했다고 하지만 확장팩 합해서 100만장은 팔렸습니다. 그 시절 꽤 높은 사양의 RTS게임이고 물량전이 없다는것에서
    스타에 비해서 인기를 못 끈거지 전세계적으로 보면 스타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보였져

    2009/08/31 13:47
  11. BlogIcon 무량수w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경쟁작은 C&C 를 가장 크게 염두해 두는군요. ^^; RPG 요소의 도입은 C&C 타이베리안 선에서 먼저 도입이 되었답니다. 물론 C&C에서는 유닛의 렙이 오르는 정도로 그냥 소모품을 강화시켜서 쓸수있다! 뭐 이런 느낌의 개념이지요. 워크3에서는 영웅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더 새롭게 만들었지요. 더불어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이 강했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RPG의 요소를 전략 시뮬레이션에 접목시킬수 있었던 큰 힘은 아무래도 스타의 유즈맵 세팅을 통한 유저들의 놀이 방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들이 했던 것 중에 가장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놀이를 제작할 수 있는 도구를 주고 유저들 스스로 놀이를 만들수 있게 해주어서 그들의 생각과 유행을 알아낸 것이라고 생가합니다.

    이것은 시장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일 테니까요. ^^

    2009/09/03 20:11
    • BlogIcon 페이비안  수정/삭제

      블리자드의 성공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말 여러모로 큰 공로가 있죠. 궁극적으로는 그런 부분을 제대로 캐치해낸 블리자드 자체가 굉장하기도 하지만 말이죠.

      2009/09/0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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